이혼하고 혼자 키운 딸인데
30살 되도록 결혼 말이 없길래
그런갑다 하고 재촉하진 않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결혼하고 싶다길래
어떤 남자냐 물어보니까
나이는 마흔이고 이혼했고
딸이 있는 남자랍니다
애는 올해 초등학교에 가고요
자기가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답니다
애 친엄마는 연락두절이라
애가 자길 친엄마처럼 따른다고요
반대해봤자 알아먹을 것 같지 않았어요
걔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냐 했더니
잘 키울 거라고 해서 그럼 한번 키워보라 했습니다
1월부터 애만 저희집에 데려왔어요
어차피 학교 가니 유치원은 좀 일찍 관두고요
딸은 재택근무가 자유로워서
한번 일하면서 애 키워보라 했습니다
애는 아주 보통의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균적인 여자 아이였습니다
마음 독하게 먹고 안 도와줬어요
애 식사부터 목욕, 공부까지
네가 알아서 해보라고 했어요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결혼은 고사하고 헤어졌어요
애 아빠랑 같이 있을 때는 착하고
순하기만 한 애가
같이 사니 그게 될 리가 있나요
애는 아침 일찍 일어나 뛰어다니고
배고프다 하면 딸 깨워서 밥 차리라 했어요
애는 반찬투정 하고
딸은 처음에는 좀 참다가 애를 혼냈고요
일을 해야하니
만화영화 틀어주고 보라 하는데
몇시간 동안 보면 금새 점심시간 오고
그럼 딸은 또 밥 차리고요
저는 그 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많이 나다녔네요
특히 신경쓰였던 건
저희집에서 애를 키운다 했을 때
아무말 없이 그러라 한 애 아빠의 태도였습니다
애도 아빠를 그렇게 보고싶지 않아하고요
주말에 와서 애 데려갈 때
처음에는 양손 두둑히 들고 오더니
한 2주 지나니 그것도 없어졌고요
딸이랑도 많이 싸운 것 같더군요
주말에 딸은 쉬고싶어 했는데
제가 내쫓았습니다
놀이공원이니 동물원이니
애랑 다녀오게 시켰거든요
보통 딸이 이런 경우에
피임시술하고 동거만 하라 하던데
저는 효과 없을 것 같았어요
덜컥 애 낳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1년 정도 지켜보고 허락할까 했는데
두달도 안 되서 끝이 났습니다
마음 고생 많았지만
잘한 것 같네요

애를 이용했다는 댓글이 많네요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아이는 코로나 한창일 때나
애 아빠가 출장갔을 때 지방에 있는 친할머니
집에서 자주 있었던 상태라
남의 집에 아빠랑 떨어져 있는 걸
그렇게 힘들어 하진 않았습니다
근데 마음대로 빠질 수 있는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그렇게 쉽게 결석할 수가 없고
애 할머니는 70대여서
손녀를 키우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딸이랑은 1년 이랑 알고 지낸 사이었고
아빠가 바쁘니까 언니 집에서 잠깐 지내자 하고
데려왔고 갈 때는 이제 아빠랑 다시 살자 하고
보냈습니다
딸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살림을 합치고 싶어했고
제가 반대하든 하지 않든
그집으로 갔을 겁니다
그 정도로 아이한테 애착이 컸어요
그래서 제가 저희집에 데려와서 키우고
정말 할 수 있으면 그때 결혼해라
조건을 건 것입니다
그리고 딸은 자기 아이도 낳고 싶어해서
저도 그 애를 손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도와줬다고는 했지만
식사 목욕 공부만 딸이 알아서 하게했고
딸이 일이 바쁘거나 꼭 나가야 할 때는
제가 돌봐줬습니다
놀이터 갈 때는 혹시나 무슨 일 있을까봐
저도 꼭 같이 갔고
마트나 시장 갈 때도 한번씩 데리고 갔고요
딸은 방 얻어서 독립했습니다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남자를 다시 만나 결혼한다고 하면
저도 반대할만큼 반대했으니 허락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