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년차 애둘 맞벌이 부부입니다
저는 아내이고
일찍 결혼하여 자리 잡길 원했어요
지금 남편과는 친구 소개로 만났고
그렇게 1년여간 연애를 하다 결혼 준비를 했어요
상견례 하러 가는 길에, 시부모님 두분이
굳이 교통비 들이지 말자 하셔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였어요)
한차로 움직였어요
3시간이상의 장거리였기에 피곤하셨는지
시부와 시모는 함께 담배를 피더군요ㅋㅋㅋ
암튼 상견례는 큰 문제는 없었어요
이제 신혼집을 구해야하는데
시부모님이 남편한테 주신다는
5천 얘기가 갑자기 쏙 들어갔습니다
결혼 한달 전.. 5천에서 3천… 2천… 그렇게
시장에서 야채값 깍듯이 돈을 깍으시더라구요
그래도 전 괜찮다며 영혼까지 끌어서
제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했어요
예단비 500 드렸고, 티비 바꿔드렸습니다
재혼 가정이었기에 친척에
이불 나눠드릴분이 한분도 안계셨어요
그 일로 결혼을 하네 마네 싸웠는데
제가 결혼을 포기하지 못하고 강행했어요
사실 제가 이렇게
결혼을 서두른 이유는, 저희 친정엄마가
제가 중2때부터 아프셨어요.
그날부터 시한부 인생을 사셨고..
결혼하기 2년전에는 의식이 없는채로
2주이상 입원하셨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나셨었죠…
전 4남매중 늦둥이 막내였고.
제가 결혼하는게 유일한 효도였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였고,
부주금 모두 각각의 집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시골에서 저희 친정이 올라오시기에
버스대절비는 제가 냈고,
남편쪽에서 식사비 내기로 했어요.
이렇게 결혼하는게 억울해서 남편한테 우겼어요.
다 생략하고 식사비만 부담하기로 하였고
신랑측 130명 신부측 150명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예식장은 신랑집과 가까운 초저렴한곳으로 잡았고
당시 식대비가 3만원이 넘지 않는
제일 저렴한걸로 했네요.
그렇게 신혼여행을 떠났고.
식대비가 맘에 걸린
친정엄마는 150을 시댁 드리라고 주셨고.
저 역시 신행 다녀온 후 선물대신 현금 100을 챙겨서
250을 신혼여행 다녀온후 드렸습니다.
그자리에서 신이나서 세어보시더군요..
결혼 식비가 많이 나와서
적자났다는 얘기도 함께 하시면서요.
기분이 좋으신 시모는
그날 3차까지 저희를 붙잡고 달렸습니다.
밤 12시가 넘었고, 전 다음날 출근 ,
남편은 쉬는날이었어요.
2월에 결혼했는데,
5월에 처음 친정집을 남편과 내려갔어요.
저희집은 아주 먼 지방이고.
5시간정도 걸립니다.
친정엄마는 씨암닭을 기르고 계셨는데
아직 덜 자랐다고 좀만 기다려서
꼭 사위 먹인다 하셨어요.ㅜㅜ
그때가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겹치는 연휴였는데..
어버이날때문에 시댁식구뵈러 다시 올라왔어요.
좀 더 있고 싶었는데..
언니말 잘듣고 잘 살라며
엄마는 정류장까지 저희를 배웅해 주셨어요.
올라오자마자 저녁대접을 해드렸고..
시모는 뭔가 기분이 상했는지
대뜸 둘이 살다가
안맞으면 이혼하라고 하십니다. 헐.….
제가 이말을 들을려고
귀한시간 접어가며 올라왔나요..ㅜㅜ
그게 친정엄마와의 마지막이었어요.
2주후 엄마는 본인의 살아생전 임무를 다한듯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모든게 그대로인데 엄마만 없어졌어요…
사위 준다 키우던 씨암닭이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요.
그소식 듣고 급하게 장례식장에
시부모님 모두 내려오셨어요.
처음 겪는 큰 슬픔에 .. 경황이 없었는데..
같이 내려온 큰형님 부부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십니다.
두분 사이좋게 웃으며 사진 찍으셨고..
경황이 없어 그때는 제가 잘못봤나 했어요.
근데 머지않아 사실임을 알게됐죠.
그때..
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던 그길에서..
찍었던 사진이 카톡프사에 올라왔었거든요.
엄마를 보낸 슬픔이 너무 커서
남편과 따질 힘도 없었어요.
몇달은 봐도 모른척 혼자 가슴에 묻었습니다.
첫애 임신 후 첫명절에 시모가 대뜸 고백을 합니다.
자기 아들정도면 어디하나 빼놓을곳이 없어서
시집올 여자가 돈을 들고와야한다.
자기 둘째 아들은 결혼 할 여자가
1억 3천 들고와야지 결혼 시켜주겠다.
정확한 금액까지 짚어주시네요.
아.. 그때 알았어요.
시모는 제가 돈을 많이 안들고와서 싫었던거에요…
당시 제가 남편보다 월급이 더 많았습니다.ㅜㅜ
얼마차이 나지 않았지만 남편이 대단한 직장도 아니고
그냥 평사원이에요..
뵙는 횟수가 많진 않았지만.
뵐때마다 용돈 챙겨드렸고. .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부모가 소중했으니
남편부모도 소중하다 생각했어요.
첫애 출산전 애는 누가 봐주냐 물으셨을때
단호히 친정언니가 봐주기로 했다 말씀드렸어요.
두분 집에서 담배피는게 너무 싫었고
그런집에 제애를 맡기는건 상상할수 없었으니까요.
근데. .
첫애 출산 후 시부모의 생계로
운영하시던 전집을 접으시네요.
그전에도 슬렁슬렁 하셨으나,
이번엔 아예 문닫는다 하셨습니다.
아랑곳 하지 않았고
언니집 근처로 저희는 이사를 갔어요
.
어느날은 둘이 맞벌이라
반찬도 못챙겨먹을꺼 같다고 하셔서
시모가 직접 반찬을 만들어준다 하셨지요.
제아이 100일쯤이었어요. 한여름이었구요.
오셔서 고생하시니 용돈 좀 드리라고
20 남편에게 쥐어주고 출근했고
퇴근해서 돌아와보니
먹다남은 장조림과 애호박볶음이 있었어요.
그날 애기는 열이 끓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덥다고 죙일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죠.
그렇게 열감기가 3일정도 지속되었고.
밤새 간호하다가 출근하다가
저또한 넘 힘들었어요.
그와중에 시부 전화가 왔는데 못받고.
시모 전화가 와서 받으니 시모 난리납니다.
애가 아파도 전화 받을시간도 없냐며..
30분 설교하다 끊으시네요.
애 괜찮냐 말한마디 없이요….. ㅡㅜ
큰애는 커서 돌잔치를 하였고
시모가 동네친구 몇을 끌고와서
제일 늦게까지 술잔치를 벌입니다.
그래놓고 집에와서 전화가 오더군요.
돌잔치 끝나고 돈 많이 남지 않았냐고..
바보같이 그때서야 알았어요.
돈줄이었구나..
우리가 당신네 ATM기였구나…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연락해오더라구요.
결혼할때 꿔준 2천만원 갚으라고… ㅎㅎㅎㅎ
꿔준거래요. 그때 준돈이 아니래요.
그돈 주면 그냥 연끊을까 하다가
도저히 괘씸해서 안되겠더라구요.
그 2천은 내 자존심이고 그돈은 못주고
너희 집구석이랑 일절 연락을 끊겠다 ..!!!
그뒤로 시모시부 제게는 연락없이 지내요.
처음부터 맘에 안들었던거죠.
꼬박꼬박 용돈주던 아들을 빼았겼으니까요.
큰애가 크는동안 중간중간 남편 혼자 왕래하였고
둘째가 태어나서는 남편마져 잘 안갔어요.
계속 시모와는 연락을 이어갔고 작년에 남편이..
자꾸 본인 엄마가 애둘을 보고싶어한다.
중간에서 자기가 암걸리겠다 하더라구요.
천륜인데 네가 끊겠냐 싶고..
조부모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첫째를 위해 제가 희생하기로 했어요.
그래! 오늘 가자. 연락해라 .
차안에서 블루투스로 통화하는데
힘들어서 오지 말랍니다.
할머니도 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
담에 보자 ~~~ 라며
아는 할머니처럼 쿨하게 말하더라구요.
그때 셔터 닫았습니다.
갱생불가. 인생에서 아웃…
미안하다 아이들아. 너희에겐 조부모가 없다.
일절 한마디 말없이 키웠어요.
근데 오늘 남편이 또 들쑤셔요.
자기가 중간에서 힘들다고.
애둘이 이렇게까지 커가는데
엄마한테만이라도 보여주고싶다고
남편이 그럴자격 있나요????
애들까지 안보여주는제가.. 그
렇게 독한년인가요? ㅜㅜ

질타같은 댓글 전부 읽어보았어요.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많은 욕설이 있네요 ㅜㅜ
고구마같은 인생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해요.
친정엄마는 제가 사춘기때부터 아프시고..
내내 너 결혼하는거 보고 죽는게 소원이다.
친정오빠도 결혼 빨리해라…
압박감이 있었어요.
사리판단하지 못한 제잘못이 크네요.
제딴에는 그래도 엄마 돌아가시기전에
결혼해서 참 다행이다ㅜ생각했는데….
그게 더 큰 불효일지 생각 못했어요. T T
다시금 제인생 되돌아볼때 .. 답
답하고 바보같네요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뭘 위해 내가 살았을까…….